수제 가죽 지갑 8000원, 다이얼 쿼츠 시계 5000원, 인조 진주 귀걸이 400원.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가격대지만 분명 ‘실화’다. 중국 이커머스 직구 플랫폼 ‘테무(Temu)’에서 판매 중인 제품 목록이다. ‘다이소보다 더 싸다’는 입소문을 등에 업고 1020대는 물론 60대 이상에서도 테무를 애용한다는 증언이 줄을 잇는다.
특급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 이커머스, 이른바 ‘C-커머스’ 열풍이 최근 한국을 강타한 모습이다. 고물가 장기화에 값싼 제품에 눈 돌리는 소비자가 늘면서 이용자 수가 폭증했다. 테무, 쉬인(SHEIN), 알리익스프레스(Ali Express) 등 주요 플랫폼 앞 글자를 따 ‘테·쉬·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C-커머스 공습에 국내 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테·쉬·알에 이용자 다 뺏긴다
쇼핑 앱 이용자 증가 1·2위 독식
최근 C-커머스 열풍은 수치로 알기 쉽게 증명된다. 애플리케이션(앱) 월간 순사용자(MAU)가 급증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3년 MAU가 가장 많이 늘어난 쇼핑 앱 1·2위를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가 나란히 차지했다. 2023년 4월 5788명으로 출발한 테무 MAU는 지난 12월에는 328만명까지 급등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2023년 1월 227만명에서 12월 496만명으로, 패션 앱 쉬인 역시 같은 기간 9만명에서 39만명까지 뛰었다. 10월에는 54만명을 찍기도 했다.
반대로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은 상반된 분위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2023년 1월과 12월을 비교하면 대부분 앱 MAU가 쪼그라들었다. 쿠팡(2759만명 → 2728만명), 11번가(862만명 → 744만명), 티몬(357만명 → 321만명) 등 주요 앱 사용자 수가 줄었다. C-커머스에 사용자를 빼앗겼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다.
중국발 직구 액수도 크게 늘었다. 2023년 3분기 기준 온라인 직구 금액은 1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커졌다. 특히 중국 직구 금액이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국에서 출발한 온라인 직구 금액은 2023년 3분기 기준 8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전체 온라인 직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8년 17%에서 지난해 3분기 50%까지 급증했다. 반면 지난해 3분기 국내 이커머스 거래액은 57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 성장에 머물렀다. 20%대 성장률을 보이던 팬데믹 기간과 비교하면 확연히 둔화됐다.
마진 없앤 ‘초저가’…배송도 개선
C-커머스 열풍의 일등 공신은 단연 ‘가성비’다. 테·쉬·알 3사 모델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저마다 초저가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놓은 상황이다.
테무는 ‘최대 90% 할인’이라는 공격적 프로모션을 앞세워 1000원 미만부터 3만원대 제품 위주로 초저가 판매 중이다. 비결은 D2C(Direct to Customer)다.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바로 연결해 유통 마진을 줄이는 모델이다. 이용자가 신규 고객을 초대하면 실제 가입으로 이어질 때마다 현금처럼 제공하는 공격적인 프로모션도 무시 못한다. 많게는 수십만원 상당의 포인트를 받아간 이들도 나올 정도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전 세계 200개가 넘는 국가에 자리 잡고 있는 알리바바그룹 공급망을 적극 활용한다. 중국 내 다양한 상품을 한 번에 대규모로 구입한 후 각지에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형적인 ‘박리다매’다. 패스트 패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쉬인도 비슷하다. 중국 광저우에 위치한 의류 공장과 도매 시장으로부터 대량 제작·구입한 의류를 초저가에 판매하는 식이다. 덕분에 비슷한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자라나 H&M 대비 가격이 70% 가까이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쉬인은 중국 패션 생산 거점인 광저우 원단 공장과 제조 업체를 통해 저가 제작이 가능하다”며 “빠른 정산 주기를 앞세워 이미 수천 개 제조 업체를 확보해놓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보통 납품 90일 이후 정산이 일반적이지만 쉬인은 2주 만에 다 끝낸다”고 비결을 설명했다.
쇼핑 편의성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 중국 직구 고질병으로 지목돼온 ‘느린 배송 시간’과 ‘비싼 배송비’가 개선된 모습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시장 1000억원 투자 계획을 공언하며 서비스 개선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수백만 개 상품에 대해 5일 내 배송을 보장하고 1000원짜리 제품도 무료 배송을 해주는 정책으로 빠르게 회원을 늘렸다. 결제 역시 지난해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와 연동을 마치는 등 방식이 매우 간소화됐다는 평가다.
테무 역시 ‘모든 주문 무료 배송’과 ‘90일 이내 무료 반품’ 키워드를 앱 상단에 고정해놓고 있다. 쉬인은 자동 번역을 통해 전 세계 모든 이용자 후기를 열람할 수 있는 기능으로 호평받고 있다. 모든 주문에 대해 무료로 24시간 내 출고한다는 점도 경쟁력이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직구 배송 기간은 앞으로 더 단축될 여지도 남아 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 내 물류센터를 확보한다면 5일 배송에서 나아가 익일 배송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재구매율 높은 상품을 국내 물류센터에 대거 입고시킨 이후 CJ대한통운 등 국내 택배 업체를 통해 배송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추천 등 차별화된 쇼핑 경험 제공으로 젊은 세대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린아 애널리스트는 “테무는 기존 검색 중심 쇼핑을 넘어 ‘발견형 쇼핑’이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AI 추천으로 소비자가 관심 가질 만한 상품을 계속 노출하는 방식”이라며 “구매할 생각이 없다가도 가격을 보고 충동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C-커머스 돌풍 언제까지
‘초저가 공세’ 앞에 각종 논란 무색
C-커머스 관심이 뜨겁다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여전히 리스크도 크다. 짝퉁 논란과 안전 기준 부적합, 까다로운 환불 절차 등이 대표적이다. 사용자가 늘며 개인정보 보호 이슈도 부각되고 있다. 특히 최근 사용자가 급증한 알리익스프레스를 둘러싼 논란이 적잖다. 지난해 8월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물품 직접 구매 중 피해를 본 소비자 중 전체 60.8%가 알리익스프레스를 통해 물품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열린 공정위 국정감사에서 가품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있다.
초저가 전략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김하정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공격적인 할인 프로모션은 수익화 측면에서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구조다. 중국 D2C 공급망을 통한 낮은 가격이 가장 큰 무기지만 공급망 경쟁 우위가 사라질 경우 한때 유행으로 그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C-커머스 사용자 수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짝퉁 논란, 느린 배송, 어려운 환불 등 수많은 리스크가 ‘초저가 공세’ 앞에서 빛이 바래는 형국이다. 전병서 중국금융연구소장은 “전 세계적인 반중 정서에도 불구하고 아마존, 이베이 같은 미국 거대 기업마저 맥을 못 추고 있는 요즘이다. 빅데이터 기술과 물류 배송 체계가 결합되면서 전 세계 유통 시장을 잡아먹고 있다”며 “한국은 중국 플랫폼 기업 대변신을 여전히 제대로 인식도 못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다 집어 먹힐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철저한 자기반성과 벤치마킹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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